'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14건

  1. 2013.05.21 입사 712일..
  2. 2013.05.21 소외감, 공허함, 이어지는 무기력과 의욕상실, 그리고 좌절
  3. 2012.11.25 타이어 & 휠 교체
  4. 2012.11.09 간만의 칼퇴..
  5. 2012.11.01 입사 512일..
  6. 2011.08.06 입사 61일.. 2
  7. 2011.05.15 ‘박근혜표’ 사회적 자본
  8. 2011.05.15 이승만 다시 보기
  9. 2011.05.15 식량위기, 내 탓은 없는 걸까
  10. 2011.05.15 굶는 아들에게 돈 대신 편지 쓴 아내 현숙한 당신을 만나 행복합니다
  11. 2011.05.15 애플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12. 2011.05.12 군 가산점제와 작금의 한국사회..
  13. 2011.05.12 전자책은 종이책의 적이 아니다
  14. 2011.05.12 네이버는 재미가 없어졌다?
  15. 2011.05.12 삼성 동물원, 애플 생태계
  16. 2011.05.12 ‘정규직 세습’ 묵인 않는 노조원들
  17. 2011.05.10 경제이론(from 네이버캐스트)
  18. 2011.05.10 "노래에 깊이가 없네요"라는 평가의 가혹함
  19. 2011.05.10 경쟁교육이 부른 학생 카스트, ‘알짜-예비-잉여’
  20. 2011.05.10 ‘대국민투표’의 재미?!

입사 712일..

일상다반사 2013. 5. 21. 23:08

 

 

모니터, 서류철, 업무량, 책임감, 부담감 등..

뭐가 계속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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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감, 공허함, 이어지는 무기력과 의욕상실, 그리고 좌절

읽을거리/기타 2013. 5. 21. 22:55

혼자 있다고 해서 항상 외로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곁에 누군가가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더더욱 아니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순간에 때때로 더 큰 외로움을 느낍니다.

또한 많은 인파와 군중 속에서도 외로움은 늘 우리곁에 머뭅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느냐, 함께 있느냐 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내 마음을 온전히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고민하는 나의 주관적 느낌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즉, 누군가가 곁에 있다해도 그가 나에게 내가 원하는 크기 만큼의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우리의 영혼을 무기력과 의욕상실, 공허함과 외로움, 그리고 소외감과 좌절의 상태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요!

내 곁에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때때로 나를 가장 슬프고 외롭고 비참하게 만드는 존재라는 사실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 본질적으로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외로운 것은 내 안에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내면의 눈 없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존경받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아도 외로움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사랑을 받아도 그때 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공허해질테니까요.


나의 내면은 내가 가꾸어야지요.

상대방이 나의 내면을 가꾸거나 채워줄 수 없고, 

심지어 상대방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해요.


한 인간의 끝없는 방황과 좌절은 

스스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함께 걸어가 줄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시련은 바로

공허한 마음에서 발생하는 지긋지긋한 외로움 때문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 기뻐하고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사랑을 할 때 집착과 괴로움, 공허함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상대를 사랑해주는만큼 상대로부터 받고 싶은 욕심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외롭지 않으려면 사랑받으려 하지말고,

먼저 다가가서 그냥 사랑하면 됩니다.


우리 삶이 그렇게 대단한게 아닙니다.

길가에 핀 이름모를 들꽃처럼 그렇게 피고 지는 것일 뿐이에요.

길가에 들꽃이 이유가 있어서 태어나고, 이유가 있어서 함께 피고, 이유가 있어서 지는 것이 아니듯,

우리 삶도 그렇게 고즈넉하게 서로 아껴주고 토닥이고 감싸주고,

그러다가 서로를 향해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끼고, 사랑을 하고,

그렇게 삶의 본질을 깨달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소외감, 공허함, 이어지는 무기력과 의욕상실, 그리고 좌절'중에서

희망아키텍트 혜윤 이동윤, 마음다해.


출처 : http://blog.naver.com/skboram/100165439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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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 휠 교체

일상다반사 2012. 11. 25. 17:23





한국타이어 VENTUS V12 evo 195/50R15 82V & 지오바니 15" X 6.5J 8H +35 100

2012년 11월 24일 티스테이션 월곶점에서 친절한 사장님께서 작업.

현대카드 무이자 12개월 할부..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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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 칼퇴..

일상다반사 2012. 11. 9. 18:51



간만의 칼퇴.. 그리고 이금희의 사랑하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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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512일..

일상다반사 2012. 11. 1. 19:06


많은 생각이 들지만, 일단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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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61일..

일상다반사 2011. 8. 6. 13:21


금일로 취직을 한지 정확히 두 달..
지난 두 달여 동안 취업 후의 긴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으니..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는 것은 사치일 뿐..ㅋ

이제 회사생활에 어느정도 적응 좀 됐지 싶다..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에 글도 남기고..ㅋ

그나저나 금일은 토요일..
내가 위치한 곳은 회사..
사진 속 책상의 주인은 나..

토요일에도 출근한 내 기분은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게 좋은거지..ㅋ

아무튼 그동안에 못 읽었던 책도 좀 읽고, 여유 좀 부리다가 시간되면 퇴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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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표’ 사회적 자본

읽을거리/경제/경영 2011. 5. 15. 15:38
자신은 특별하기에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인의 경우 이런 생각이 심하면 공주병이나 왕자병 환자, 이른바 ‘자기애(愛)적 인격장애인’으로 취급받는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별로 환영받지는 못하지만 사회에 큰 피해를 주는 일은 없다. 문제는 자신의 돈과 권력을 활용하여 실제로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 이른바 ‘특권층’이다.

‘불공정 사회’ 박정희 시스템 산물

이들의 공통점은 편법과 기득권 등을 이용하여 공공자산을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거나 심지어 사익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에 있다. 유명 로펌의 전직 고위공직자 영입과 공직자의 전관예우 등에 의해 국가권력이 무력화되고 법 앞의 평등이 형해화되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듯이 특권층의 정점에 재벌이 있고, 국가권력과 언론권력 등이 재벌과 서로 의존하며 지지하는 유기적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지식인 사회가 이러한 구조를 정당화시키며 기생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특권층은 반칙과 불공정의 상징이다. 이들은 반칙과 불공정을 일반 사람과 다른 능력으로 미화시키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비웃는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최근 유럽 방문 중에 ‘사회적 자본’을 선진국 진입을 위한 핵심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공동목표를 효율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력,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일체의 신뢰 등 사회적 자산을 말한다.

주지하듯이 산업화는 인적 및 물적 자본으로 성취할 수 있었던 반면,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면 협력과 공유 그리고 신뢰로 사회를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사회적 자본은 OECD 국가 29개국 중 22위로 최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과 불공정성이 그 요인으로 지적된다. 우리 사회의 낮은 신뢰와 불공정성은 재벌 중심의 사회경제를 구조화시킨 박정희 시스템의 산물이다.

주지하듯이 박정희는 1969년 10월 3선 개헌을 무리하게 통과시키면서 ‘아집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 영구집권의 길을 위해 억압과 금권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위해 재벌과 권력 간에 부정한 동거구조가 형성되었다. 즉 박정희 체제는 자신의 취약성을 특혜와 부정부패 등으로 상징되는 정경유착에 의지하였다.

1973년부터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중화학공업화 정책의 산물로 성립한 오늘의 재벌중심 체제는 이익의 대부분을 재벌 및 권력집단 중심으로 소수가 사유화하고 손실을 사회 전체에 전가시키는 불공정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박정희 체제는 불공정성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성장(돈)에 최고 가치를 부여하는 한편, 체제에 대한 순응과 정치적 무관심을 국민에게 강요하였다. 그 결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나 구성원 상호 간의 신뢰나 협력 등 사회의 네트워크 유지에 필요한 사회적 자본은 파괴되었고, 우리 사회는 파편화되었다.

특권구조 혁파 청사진 제시해야

박근혜 전 대표가 소망하는 신뢰와 사회적 자본의 구축 그리고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려면 역설적으로 자기 뿌리를 부정해야만 가능한 이유다. 사실, 사회적 자본의 함양과 고(高) 신뢰사회의 구축은 이명박 정부가 선진화 달성을 위해 5대 국정지표의 하나로 제시한 목표다.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선진국가로 한 단계 발전하려면 사회 곳곳에 있는 불공정을 공정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지만 지금 그 결과는 얼마나 공허한가? 박정희와 박근혜를 분리할 수 없다 해서 연좌제를 적용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 특권구조의 혁파에 대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 한 ‘박근혜표’ 사회적 자본 역시 허망한 구호로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배근|건국대 교수·경제학

[출처] 경향신문 /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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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다시 보기

읽을거리/역사/문화 2011. 5. 15. 15:36
1958년은 이승만이 영구집권을 꿈꾸며 4선의 대통령에 대비하여 대대적인 선전활동을 벌이던 때였다. 이승만의 출생에서부터 어린 시절의 영특한 두뇌와 열혈 청년 시절의 왕성했던 독립투쟁 등 초대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의 불세출의 영웅적 모습을 담아낸 홍보물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리고 그런 대통령을 둔 우리나라가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내가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에서도 위대하신 이승만 대통령 할아버지에 대한 어린이 글짓기 대회가 있었다. 내가 쓴 글도 뽑혀서 여러 선생님과 전교생 앞에서 읽힌 일도 있다. 

그 뒤 몇년이 되지 않아 1960년 4·19 민주혁명이 일어났다. 이승만에 대한 나의 어린 시절 환상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내 앞에 다시 나타난 이승만은 인자한 대통령 할아버지가 아니라 지독한 독재자이고 학살자였다. 

독재와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쫓겨났지만, 그동안 그가 저지른 인권유린은 두고두고 파헤쳐질 일이다. 한국전쟁에서 우리 대한민국 국군(유엔군 포함)이 실제 전투에서 인민군과 중공군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전사자는 18만명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이승만이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비무장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적법 절차 없이 학살한 인원은 100만명이 넘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전쟁 때 이념이란 이름으로 이승만이 저지른 숨길 수 없는 잔악상의 진실이며, 독일의 히틀러가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이나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가 저지른 킬링필드와 마찬가지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학살의 원죄가 이승만에게도 있었다. 

제주4·3사건, 거창 양민학살사건 등 이미 밝혀진 사건 말고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하여 지난 5년 동안의 짧은 기간에 전국 각지의 국민보도연맹학살사건, 부역혐의자학살사건 등 이루 셀 수 없는 많은 사건이 빙산의 일각이긴 하지만 진실로 밝혀졌다. 

올해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1년, 4·19 민주혁명이 일어난 지 꼭 51년이 되는 해다. 이때를 맞추어서 최근 이승만기념사업회란 곳에서 주요 일간지에 내건 큼지막한 광고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었다.” “이승만 기념관 없이 국격을 논하지 마라.” 그리고 서울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이 기념사업회의 일꾼 중에는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김문수 경기지사와 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등 유력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방송에서는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이승만과 제1공화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2011년도 10대 기획물의 하나로 추진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현 정권 들어서 뉴라이트 세력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니 하여 ‘이승만 국부론’을 확산시키는 데 열을 올리고 있을 뿐 아니라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시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바로 한달 전에는 더 공격적인 해프닝도 있었다. 이승만기념사업회가 4·19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선전포고라도 하듯이 일방적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4·19 묘소 참배도 강행하려 하였다. 

이는 비민주적인 독재를 부정하고 국가범죄를 부인하는 역사왜곡 행위이며 우리 헌법의 근간조차 무시하는 처사이다. 

정석희 한국전쟁유족회 총괄사업단장

[출처] 한겨레 /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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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위기, 내 탓은 없는 걸까

읽을거리/사회 2011. 5. 15. 15:33
얼추 오십을 넘긴 시골 출신이라면 대부분 경험했을 거다. 배고픔. 너나없이 가난했던 그 시절, 배고픔은 일상이었다. 그게 불과 몇십년 전이다. 흐른 세월은 과거를 부정한다. 배고픔의 기억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일 뿐이다. 이젠 밥풀 흘렸다고 욕먹지 않는다. 오히려 떨어진 밥풀을 주워 먹으면 혼난다. 풍요와 배부름이 당연한 세상이다. 어느덧 빈곤과 배고픔은 내놓기 쑥스러운 주제가 되어버렸다. 남의 일일 뿐이다.

그래도 좋은 걸까. 여전히 지구촌은 배고프다. 한국도 배고픔을 완전히 떨쳐버린 건 아니다. 한반도로 범위를 넓히면 처참하기까지 하다.

올해 초 식량 문제가 화두가 된 적이 있다. 그땐 모두가 식량위기를 말했다. 참 떠들썩했다. 하나 그도 잠시, 세상은 이내 조용해졌다. 그새 국제 곡물가격은 슬금슬금 올라 우리 식탁 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라면에서 과자까지 오르지 않은 게 없다.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릇된 환율정책, 시기를 놓친 금리정책, 기업들의 이기적 이윤추구, 미국의 폭력적 양적완화 정책 등을 들먹이며 비난에 열을 올린다. 모두 일리 있다. 그런데 전부 남 탓이다. 내 탓, 우리 탓은 없다.

식사나 술자리 직후, 식탁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는가. 대개 남겨진 음식물로 질펀하기 마련이다. 왕왕 먹은 양보다 남겨진 양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이렇게 남겨진 음식물은 쓰레기일 뿐이다. 과잉 소비다. 우리는 잊고 산다. 우리에겐 쓰레기에 불과한 이 음식물을 얻기 위해 오늘도 지구촌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있다는 걸. 오늘도 10억명의 사람이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걸. 그런데도 우린 오늘도 넘치게 차려 남기고 버린다. 이게 지구촌 식량위기의 한 원인이다. 우리도 원인제공자다.

물론 과잉소비는 식량·식탁물가 위기의 종범에 불과하다. 주범은 따로 있다. 바로 곡물의 엉뚱한 전용이다. 지구촌에서 수확되는 곡물의 상당량이 육류와 연료 생산에 전용된다. 미국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3분의 1이 에탄올 생산에 쓰인다.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사료로 쓰이는 곡물도 만만치 않다. 한 단위의 고기를 얻기 위해선 그 몇 배의 곡물이 투입되어야 한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고기는 농축된 곡물 덩어리이다.

이러니 식량위기가 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과잉소비와 곡물의 전용이 식량위기를 상시화하고 있다. 이게 식량위기의 본질이다. 설상가상 지구촌의후변화 양태도 심상치 않다. 토양은 점점 오염되고 있고 대수층은 나날이 고갈되고 있다. 게다가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2060년이 되면 지구촌 인구가 100억명을 돌파할 거란 전망이다. 무서운 일이다.

지구촌 전체가 해답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 전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즉시 시작해야 한다. 곡물의 에탄올 전용을 개인이 막아내기는 힘들다. 하나 먹거리 소비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적당히 먹고 적게 버리면 된다.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이게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이건 물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자발적 소비 억제야말로 힘없는 소비자가 자본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터무니없이 비싼 과자와 라면은 아예 사 먹지 않으면 된다. 그래야 자본의 횡포도 줄어들 것이다.

한 번 두툼해진 뱃살은 빼기 힘들다. 그래도 빼야 한다. 그러자니 시간과 돈이 든다. 이게 무슨 낭비란 말인가. 애초 넘치게 먹지 않으면 될 일이다. 절집의 승려가 되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때론 흐드러지게 먹고 마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가끔이어도 좋을 일이다. 매일이 마냥 풍요로운 축제일 수는 없다. 약간의 허기에서 오는 절제의 행복이 포만감에서 오는 그것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이게 나 자신과 지구를 사랑하는 길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출처] 한겨레 / 원문 링크 

:

굶는 아들에게 돈 대신 편지 쓴 아내 현숙한 당신을 만나 행복합니다

읽을거리/사회 2011. 5. 15. 15:29

삶과 믿음

끔찍했다. 아들은 오랫동안 먹을 게 없어 저희 엄마가 아침 굶지 말라고 보내 준 미숫가루를 먹고 끼니를 때웠단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맥도날드를 찾아 1달러짜리 정크푸드를 사 먹고 버텼다고 했다. 울먹이며 걸려온 아들의 전화. 아내는 서럽게 울었다. 눈이 퉁퉁 부어 외출을 못할 지경이었다.

업보(?)였다. 우리 가정의 원칙이 하나 있다. 대학 졸업까지는 전폭적으로 도와준다. 하지만 그 후엔 독립해야 한다. 아들도 알았다. 아빠·엄마는 할 도리를 다했다는 것을. 제때 졸업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제 탓이었다. 누구도 원망할 일이 아니었다. 그날로 독립을 선언했다. 이제는 내가 내 길을 가겠노라고. 그렇게 해서 공부를 접었다. 회사 문을 두드렸다.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녀석이 찾아갈 변변한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일종의 다단계 판매회사였다. 주방용 칼을 파는 곳이었다. 수습을 거쳐 드디어 대사업가의 길로 나섰다. 그렇게 달 반을 넘게 발이 부르터져라 돌아다녀 겨우 칼 두 자루를 팔았다. 주머니는 비었다. 막막했다. 겨우 자존심을 접고 엄마에게 털어놓은 아들의 고백.

이 지경이라면 남편 모르게라도 돈을 보내 아들부터 살려 놓고 보는 게 옳다. 그런데 아내는 돈 대신 편지를 썼다. 감정이 격해 아들과 못 다 나눈 이야기들이었다.

밤늦게 집에 들어서던 나는 미처 끄지 못한 컴퓨터에 남겨진 아내의 e-메일을 훔쳐보게 됐다. 거기 이런 글이 있었다.

‘준아, 엄마가 너를 돕고 싶지만 돕지 못해 미안해. 너나 우리 가족 모두는 아빠가 정한 규칙을 따라가야만 해’.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 성경은 말한다. ‘누가 현숙한 아내를 얻겠느냐. 그녀는 진주보다 더 소중하다. 그런 여자의 남편은 아내를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여자는 일평생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남편을 해치지 않는다’. (잠언 31장 10-12절)

며칠 후면 부부의 날이다. 그때 그 형용하지 못할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해 본다.
가-가장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을 일러 ‘행복’이라 합니다.
나-나의 빈자리가 당신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것은 ‘소망’입니다.
다-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라-라일락 향기와 같은 당신의 향에 목마름은 ‘그리움’ 때문입니다.
마-마음속 깊이 당신을 사모하다 ‘시인’이 되었습니다.
바-바라볼수록 당신은 내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사-사랑한다는 수천 마디 말보다 더 기다려지는 것은 당신의 그윽한 ‘눈길’입니다.
아-아무런 대답이 없어도 여전히 기다릴 수 있음이 ‘믿음’입니다.
자-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도 아깝지 않은 것은 당신의 ‘미소’가 있어서입니다.
차-차가운 겨울이 와도 두렵지 않은 것은 당신의 ‘숨결’이 느껴져서입니다.
카-카나리아 같은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목청껏 소리치고 싶은 것은 당신이 나의 ‘꿈’이 되어서입니다.
타-타인으로가 아닌 함께 걷고 싶은 것은 ‘하나’의 의미를 깨우쳐서입니다.
파-파아란 하늘과 구름 위에 햇살처럼 곁에 머물고 싶은 것은 그대가 나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서입니다.
하-하얀 종이 위에 쓰고 싶은 마지막 말은 이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이래서 부부 사랑의 메아리는 존경과 애정이라 한 것일까.

송길원 /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

[출처] 중앙일보 /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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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읽을거리/경제/경영 2011. 5. 15. 15:27

How Apple works: Inside the world's biggest startup

By Adam Lashinsky, Sr. Editor at Large May 9, 2011: 5:00 AM ET


From Steve Jobs down to the janitor: How America's most successful -- and most secretive -- big company really operates.

애플은
좀처럼 실패하지 않는다. 그런데 실패를 하게 될 경우, 1 Infinite Loop 빌딩에 폭풍우가 몰아치게 된다. 2008년 여름, 애플은 3-세대 통신망에서 돌아가는 아이폰 1세대와 함께, 기업 사용자들이 블렉베리 스마트폰에서 좋아하는 기능인 이메일 싱크 기능을 제공하기로 되어 있는 모블미(MobileMe)도 같이 선보였었다. 그런데 이 모블미의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사라진 이메일에 대한 불만과 함께 싱크 문제도 없지 않았다. 리뷰도 아이폰에 대해서는 칭송 일색이었지만 모블미에 대해서는 비판 일색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관대한 인물이 아니다. 모블미를 소개하는 이벤트가 끝나자마자 그는 모블미 팀을 소환했다. 애플 캠퍼스 빌딩 4의 Town Hall 강당에 모이게 했다. 이 강당은 애플이 저널리스트들에게만 제품을 선보일 때 사용하는 장소다. 당시 이 소집에 갔던 참여자의 증언을 들어보자. 잡스는 여느 때처럼 검정색 터틀넥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채 걸어들어와서 두 손을 깍지 끼고는,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모블미가 도대체 뭔지 알려줄 분 있습니까?"

만족스러워 할 만한 답이 나오자 이번에는 다른 질문이 나왔다.

"그러면 도대체 그게 왜 안 된대?"

30여분간 잡스의 질책이 이어졌다.

"여러분이 애플의 명예를 더럽혔어요. 서로 실망시켰으니, 서로 증오해야 합니다."

잡스는 대중적인 창피감에 특히 분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전자기기 컬럼니스트인 월트 모스버그(Wlat Mossberg)도 모블미를 비난했었다.

"우리의 친구였던 모스버그가 더 이상 우리를 잘 말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잡스는 모블미 그룹 책임자를 교체했다.

모블미의 실패를 다루는 잡스의 방식은 애플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사례이다. 애플을 좋아하는 이들에 따르면, 애플은 웡카(Wonka)의 초콜릿 공장 방식으로 돌아간다. 수수께끼스럽지만 훌륭한 제품이 나오는 황홀한 곳이라는 식이다. 그런 비유는 물론 맞지만, 애플은 낭혹하고 가차 없으며 책임감이 상당히 센 기업이기도 하다. 결정도 신속하며, 최상단에서 메시지가 분명하게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잡스의 질책 이후, 모블미 팀 다수는 쫓겨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결국 모블미를 잡스가 요구하는대로 만들게 된다.)

애플의 인정사정 없는 문화는 사실 모든 기업체에서 좋아할 만한 주제이다. 대관절, 5만 명이 넘는 직원, 1천억 달러가 넘는 수입, 60%가 넘는 성장률을 가진 애플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어떻게 그리도 히트작을 여달아 낼까? 애플이 답하고 싶지 않을 질문이다. 지난 1월, 월스트리트 분석가들이 애플의 COO 팀 쿡에게 애플이 어느 정도까지 장기 전략을 갖고 있는지 물어 봤을 때, 쿡은 교묘하게 답변을 회피했다.

"글쎄요. 그것도 애플이 가진 마술의 일부죠. 아무에게도 우리 마술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 복제하게 될 테니까요."

마술사가 자기 트릭을 공개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마술이 되는지 이해하는 것까지 금지되지는 않았다. 본지는 지난 수개월간 전현직 애플 직원들을 인터뷰하여 애플 내부의 일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취재해 봤다. 물론 징계가 두려워 기록에 남기기로 동의한 직원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전직 애플 직원들의 경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들은 전통적인 기업들을 조롱하고 있다. 애플이 전형적인 대형 전자기업체라기보다는 신생 첨단기술 업체처럼 돌아가기 때문이다.

애플의 창업정신이 유지 가능한지, 아니면 스티브 잡스의 의지에 따른 결과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의문이야말로 애플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대한 답이다. 애플 지원들과 인터뷰를 나누다 보면, 시작점이 잡스가 아니더라도 결국은 잡스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애플 내부의 창조적인 과정은 끊임 없이 준비하고 있는 보스에게서 나온다는 의미다. 잡스는 애플의 보스이자, 보스 중의 보스이다. 그는 중요한 결정을 혼자 내리는 독재자이지만 칭송받고 있는 존재이며, 직원 출퇴근을 위한 샌프란시스코 왕복 셔틀버스의 디자인에서부터 카페테리아에 무슨 음식을 갖다 놓을지까지도 잡스가 결정한다.

즉, 회사 내부 속속들이를 잡스가 모두 관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없을 때 모든 것이 달라지리라는 사실을 그가 모르고 있지는 않다. 7년간 그는 병가를 세 번 떠났으며, 생소한 형태의 췌장암에 걸리고 간이식 수술도 받았었다. 그가 없으면 그의 존재는 더욱 더 부각될 것이다. 현재 그는 병가를 떠난 상태이지만, 지금도 물론 애플의 중요한 일에는 그가 관여하고 있다. 가령 아이폰 사용자의 위치를 추적한다는 주장 때문에 발생한 로케이션게이트(Locationgate) 문제에 대해 언론에 답변할 때, 잡스가 관여한다. 그리고 보다 전략적인 수준에서 잡스는 자신의 경영방식을 시스템화시키는 데에 특히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잡스 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그러니까 디테일에 대한 집중이나 비밀주의, 끊임 없는 피드백을 향후 애플의 업무 프로세스에 합치는 일이 그의 임무다.

종종 스티브 잡스를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할 때가 있다. (증거물 A, 앨런 도이치맨(Alan Deutschman)의 11년 된 잡스 평전, The Second Coming of Steve Jobs) 정말 그러하다. 선지자께서 어린 양떼들을 이끌고 우화를 알려줄 때가 있으니 말이다. 가령 "청소부와 상무(VP)의 차이점" 우화를 알아 보자. 잡스는 자기 사무실 쓰레기통이 치워져 있지 않을 때를 상정한다. 그리고 청소부에게 어째서냐고 묻는다. 열쇠가 바뀌었다거나 열쇠를 갖고 있지 않는 경우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꼭 해야 할 일을 못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청소부는 열심히 해명을 하는데, 윗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새로이 상무를 임명할 때마다 잡스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당신이 청소부라면, 이유를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청소부에서 CEO 사이 어딘가부터는 이유가 중요하지 않아요. 책임을 져야 하는 바로 그 지점이 상무입니다." (애플의 상무는 약 70명으로서, 소매점을 뺄 경우 애플의 직원 수는 2만 5천 명 정도 된다.)


잡스의 이너서클이다. 왼쪽부터 조나단 아이브, 필 실러, 에디 큐, 스콧 포스탈이 보인다. 2010년 애플 캠퍼스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잡스는 책임의 문화를 주입시키려 하고 있다. 매주 회의를 주관하여 전체 회사의 방향을 결정내리는 식이다. 월요일만 되면, 잡스는 경영팀과 만나 실적과 전략을 논의하거나 중요한 프로젝트 거의 모두를 검토한다. 그리고 수요일이 되면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회의를 갖는다. 2008년, 잡스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단순성이 분명함을 낳는다고 말했다.

"월요일만 되면 전체 사업을 검토합니다. 개발중인 모든 제품을 하나 하나 돌아보고 어젠다를 세우죠. 지난 주와 이번 주는 80% 가량이 같아요. 이 작업을 매주 하죠. 애플에 이런 정형화된 절차가 많지는 않지만 항상 되풀이하는 것이 없지 않습니다. 그 중 하나죠."

리더가 절차를 거론할 때가 한 가지, 그리고 직원들 스스로가 솔직하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환경이 또 한 가지이다. 애플은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전직 애플 디자이너이자 현재 뉴욕에서 80/20을 운영하고 있는 앤드류 보롭스키(Andrew Borovsky)의 말이다.

"디자인에 대해 말단 직원들도 경영진과 직접 피드백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보통의 경우는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거나, 아니면 그런 멍청한 짓을 그만 두라는 반응을 얻죠."

또한 책임성이야말로 애플 전체에 퍼져 있다. 애플에는 누가 무엇을 맡고 있는지에 대한 혼란함이 전혀 없으며, 심지어 애플 내부 용어로서 그러한 책임감을 가리키는 단어가 따로 있다. "DRI"이다. DRI는 직접적으로 책임을 가진 개인(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을 뜻한다. 회의 때에는 보통 DRI의 이름이 어젠다에 등장하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맡고 있는지 모두들 알고 있다. 한 전직 직원의 말이다.

"실제 회의에 항상 명부가 등장합니다. 각 임무에 누가 DRI인지 일일이 표시되어 있죠."

누군가 어떤 프로젝트의 누구를 연락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애플 내부에서는 으레 이렇게 묻는다. "누가 거기에서 DRI이죠?"

단순함이야말로 애플 조직 구조의 핵심이다. 조직도(아래 그림)를 봐도 상당히 직관적이다. 다른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점선이나 책임관계표가 전혀 아니다. 일단 애플 내부에는 위원회라는 것이 없다. 일반적인 조직 관리의 개념도 없다. "P&L", 즉 이윤과 손실로 나타나게 될 비용이나 지출을 관장하는 CFO가 한 명 있을 뿐이다. 이 조직도는 애플이 다른 기업과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나타낸다. 기업 대부분은 이윤과 손실을 경영자 책임성의 궁극적인 결과로 여긴다. 하지만 애플에서 이윤과 손실은 재무 책임자만 신경쓰는, 회사의 일부일 뿐이다. 그 결과, 명령과 통제 구조 하에서, 아이디어를 하향식이 아니라 상향식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잡스는 경쟁자와 애플의 접근방식이 이렇게 다르다고 종종 언급한다.

APPLE'S CORE

전통적이지 않은 기업의 전통적이지 않은 조직도이다. CEO 잡스는 모두의 중앙을 차지한다.


애플 내 모든 결정자들은 스티브 잡스와 가까이에 위치한다. 긴밀하게 통합되고 오랫동안 잡스를 보좌한 팀을 통해, 잡스는 모든 상황을 빠르게 알아낸다. 잡스는 또한 중대한 프로젝트를 핵심 직원들과 같이 하기 위해 내외 직원들과 주기적으로 접촉한다. 이 조직도에 애플의 모든 관리자들이 있지는 않다. 애플이 공개하는 정보에는 제한이 따르게 마련이다.

가령 그는 소니가 아이포드를 만든다면, 너무나 많은 부서가 필요하리라 말한 적이 있다. 잡스의 방식은 어떤 관측자가 평했듯, 단일한 팀으로 이뤄진다.

"부서가 많다고 시너지가 생기지 않습니다."

애플에 있어서 결과란 크기와 상관 없이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다. 한 전임 관리자는 이 접근 방식이 "끊임 없는 오류 수정"이라 말했다.

"경영팀이 방향 변화를 결정내리면, 곧바로 변화가 이뤄집니다. 웅장한 대전략이 바로 이런 방식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것까지는 아니죠."

애플의 경영진은 제품 출시 48시간 전에도 얼마든지 가격을 바꾼다고 알려져 있다. 아이폰용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하는 써드파티 개발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앱스토어까지 예상치는 않았다가 재빠르게 대처할 때도 있었다. 괜찮은 아이디어다 싶으면 그렇게 한다.

한 번에 몇 가지에만 집중하는 것이 애플 최대의 강점 중 하나다. 그런데 3,200억 달러의 가치를 가진 큰 기업체에서는 이렇게 하지 못한다. 신생 기업들의 특징 중 하나다. 애플 내부에서는, "그렇다"만큼 "안 된다"의 답변도 대단히 중요하다. 최근 애플을 떠난 한 간부의 말이다.

"스티브는 선택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말하곤 합니다."

정말일까? 아마도. 애플 크기만한 기업 중에서는 거의 없을 테고, 크기가 작다 하더라도 애플만큼 오랜 기간동안 몇 가지만 집중할 수 있는 기업도 흔치 않다.

이러한 독특한 접근방식을 융합시키는 이는 잡스 그 자신이다. 그런데 그가 구조화시킨 방법은 그가 특별히 관여하지 않고 있을 때조차도 그의 생각을 반영하는 식으로 돌아갈 정도가 되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한 내부 직원은 이런 말을 했다.

"스티브가 뭘 원하는지 회사 직원 아무나 붙잡아 놓고 물어보세요. 해답이 나올 겁니다. 90%는 스티브를 만난 적도 없을 테지만요."


애플 본사는 여섯 개의 빌딩으로 이뤄져 있다. 단, 아이튠스 사업부의 경우 근처에 좀 떨어져 있다.
왼쪽 위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부, 아래는 간부진 빌딩, 위는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오른쪽 위는 타운홀/강당이다. 오른쪽 아래는 영업, 아래에 위치한 빌딩은 하드웨어/엔지니어링 사업부이다.

스티브 잡스를 틀림 없이 만나는, 작은 그룹도 존재한다. 톱 100(Top 100)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잡스는 이들 100명과 함께 매년 3일짜리 강도 높은 연찬회를 개최한다. 이 톱 100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은 비밀이다. (아예 톱 100의 존재부터가 비밀이다.) 연찬회 참여자는 심지어 달력에 표시하지도 말 것을 명령받는다. 참여를 논의하는 것 또한 내부적으로도 안 된다. 연찬회 참석 또한 애플에서 제공하는 버스로 애플 본부에서 출발해야 하며, 자가 운전은 금지된다. 연찬회는 캘리포니아 샌터크루즈에 있는 Chaminade 리조트 & 스파와 같은 곳에서 열린다. 좋은 음식이 있되, 골프 코스는 없어야 한다는 잡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플은 회의실에 전자장비를 제거하여 경쟁사들의 스파이도 차단시킨다.

이 톱 100 연찬회는 잡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경영관리 수단이다. 잡스와 핵심 인사들은 이 연찬회를 이용하여 애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릴 중요한, 극도로 중요한 그룹을 만들기도 한다. 연찬회 무대에서 잡스는 자신의 비전을 애플의 차세대 리더들과 나눈다. 즉, 톱 100 연찬회는 전략적인 측면이 있는 동시에, 회사 내 전통을 만들어 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이 연찬회의 시작은 잡스가 개인적으로 맡는다. 여느 때의 제품 발표회만큼이나 잘 짜여진 각 세션도 곧 시작하는데, 이 프리젠테이션을 맡은 간부들은 상당히 고역이다. 한 전임 전무의 말이다.

"톱 100은 10명에게는 정말 끔찍스런 경험입니다. 나머지 90명에게는 인생 최고의 날일 수도 있겠지만요."

잡스는 톱 100을 이용해서 중대한 구상을 밝히기도 한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애플에 있었으며 지금도 애플 간부들과 친하게 지내는 마이크 제인스(Mike Janes)의 말이다.

"제가 톱 100에 있을 때 스티브는 아이포드를 선보였었습니다. 소수로 짜여진 팀 말고는 애플 내 아무도 모르고 있었어요."

톱 100의 지명은 잡스가 하며, 명예일 뿐만 아니라 지위 고하가 상관이 없다. 잡스는 회사 내 그룹을 하나의 비밀회의처럼 만들고 싶어하진 않는다. 몇 년 전 본지와 인터뷰에서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최고의 인재 100명과 일하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이들 모두가 상무일 필요는 없죠. 핵심 인력일 뿐인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아이디어를 100명 사이에서 돌리는 것이 제 일이죠."

잡스는 개인적으로 이 100명의 중요성을 대단히 높게 사고 있다. 한 전임 중역에 따르면, "만약 스티브가 회사를 다시 만들고자 한다면, 이들 100명을 끌고 나가서 만들 겁니다."

톱 100의 이름이 공공연하게 나돌지는 않지만, 촉복받은 이들의 존재는 애플 내부의 계급을 드러낸다 할 수 있다. 톱 100 명단은 영구적이지가 않으며, 잡스의 변덕에 따라 일 년 뒤에는 명단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하지만 100위에서 떨어지게 되는 것은 상당히 치욕적이다. 이 100명이 떠난 뒤의 애플 본부에서는 수다가 시작된다. 참가하지 못 했던 직원들의 말이다.

"톱 100 준비를 마치고 나면, 우리 나름대로 바닥(Bottom) 100 오찬을 갖자고 농담하곤 합니다."

"어디로 갈지 우리는 몰라야 하죠.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었어요."

애플의 나이는 35세이다. 실리콘 밸리 기업 수준치고는 상당히 성숙한 회사이며, 아직도 신생기업의 분위기가 남아 있다. 반바지에 샌들, 바보같이 꾸며 높은 책상은 많지 않지만, 그런 면에서 보면 구글의 분위기는 다르다. 구글은 파자마를 입은 채로 돌아다니면서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애플에서는 공짜 식사가 없다. (물론 식사는 보조금이 지급되며, 일반적으로 맛이 좋다.)

또한 애플은 대단히 중요한 프로젝트에 소수만 투입하는 등, 의식적으로 신생기업처럼 행동하려 노력한다. 가령 아이패드용 사파리 브라우저 코드를 작성한 프로그래머는 단 두 명이었다. 2010년 한 기술 컨퍼런스에서 인터뷰를 가졌던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기술 논쟁에 대한 답변이었다.

"애플에는 인력과 자금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성공하는 이유는, 대단히 신중하게 올라 탈 말을 고르기 때문이죠."

말 그대로만 보면 터무니 없다. 예전의 애플은 반항적인 문화를 뿌리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의 애플은 660억 달러의 현금보유고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공세적인 신생기업처럼 행동하고 있다. 한 전임 중역의 말이다.

"언제나 인력과 자금갖고 싸우죠. 우리가 얼마나 요구하는지, 스티브와 팀은 확실히 알고 싶어합니다."

애플 내부인들은 자원의 희소성이 예산보다는 중대한 일을 맡을 만한 적절한 인물 찾기에 더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한 번 애플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지출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은 애플이 최신 아이무비 소프트웨어용 트레일러 사운드트랙을 녹음하기 위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계약을 맺었던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애플은 시연용 결혼식 영상을 찍으라고 하와이로 직원들을 보냈다. 다른 각도에서도 영상을 찍기 위해, 그 다음에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교회에서도 결혼식을 찍었는데, 여기서 직원들은 약혼자와 혼객 역할을 다 해야 했다.

애플에서 업무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스스로의 광고 캠페인처럼 애플은 사업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사업기회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직 현금화시키지 않은 부분을 찾으려 노력해서 무엇을 할지 정합니다. 애플은 정 반대이죠. 훌륭한 제품을 먼저 생각한 다음, 팝니다. 프로토타입과 시연이 언제나 스프레드쉬트보다 먼저 나오죠."

특화는 애플의 규범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애플 직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집중한다. 가령 애플 온라인 스토어를 관장하는 제니퍼 베일리(Jennifer Bailey)는 애플 온라인 스토어에 올라가는 사진에 대해서는 권한이 전혀 없다. 온라인 스토어만이 아니라 애플 내에 올라가는 모든 사진을, 회사 전반적으로 그래픽 아트부에서 관장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소매담당 총 책임자인 론 존슨(Ron Johnson) 또한 자기 소매점의 재고까지 관리하지는 않는다. 재고는 팀 쿡의 담당이다. (물론 존슨은 그 외에도 할 일이 매우 많다. 장소 물색이나 스토어 내부의 서비스, 스토어 설계는 그의 책임이다.)



북경 애플스토어(위쪽)와 파리 애플스토어(아래쪽)은 소매담당 책임자인 론 존슨이 맡고 있지만, 각 상점의 재고관리 책임자는 팀 쿡이다.

잡스는 특화를 모든 역할에 최고로 알맞는 직원들을 배치시키는 과정으로 간주하며, 이러한 관리 명목의 프로세스를 빠르게 구축하고 싶어 한다. 마이크 제인스의 말이다.

"스티브라면 일반적인 인력 관리 구조는 헛소리라 몰아치겠죠. 하나의 영지를 만들어주는 꼴이니까요."

그래서 잡스는 눈에 띄는 인재들을 간부회의 때 손님으로 초대한다. 의사결정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다재다능한 간부들이 의사결정을 이루는 제너럴 일렉트릭과 같은 기업하고는 정 반대이다.

그러한 엄숙함과 잡스가 언제 불러낼지 모른다는 공포. 이 두 가지가 애플을 견디기 힘든 직장으로 만든다. 하지만 채용관련자들의 말에 따르면 한 번 애플에 갔다가 다시 나오는 경우는 낮다고 한다. 엔지니어 고용때문에 애플과 접촉을 자주 한 한 헤드헌터의 말이다.

"정말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애플은 행복한 일터입니다. 애플의 임무를 믿기 때문에 애플에 들어가서 일하죠. 설사 개인적으로는 행복하지 않다고 해도요. 사실 아이일 때 첫 번째 맥을 갖게 된 이후로 애플에서 일해보는 것을 꿈꿔 온 평직원들이 많이 있어요. 애플에서 애플 제품을 갖고 일한다. 정말 여간내기가 아니죠. 마술같은 일입니다."

전임 애플 디자이너였던 앤드류 볼롭스키의 말이다.

"그래도 일하기 정말 힘든 곳인 점은 사실입니다."

전직 제품관리 간부의 말도 비슷하다.

"애플의 입장은 '너는 지금 세계 최고로 멋진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식이거든요. '입닥치고 일이나 해라. 그럼 머물게 되리라.'이기도 하죠."

그동안 스티브 잡스는 인력관리 부서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두 번째 병가를 떠나기 직전인 3년 전, 잡스는 예일대학교 경영대 학장인 조엘 포돌니(Joel Podolny)를 고용해서 애플 대학(Apple University)를 이끌도록 했었다. 경영학에서 알아주는 인재가 포돌니 교수다. 그런데 그가 애플에 입사하고 나서, 말 그대로 그는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애플 내부 인력관리 상무가 포돌니인지 알아차리는 사람들도 없을 정도였다.

사실 포돌니는 그동안 대단히 바뻤으며, 잡스 이후의 애플에 대한 프로젝트를 작업해 오고 있었다. 포돌니는 잡스의 지시대로 저명한 하버드 대 경영학자이자 앤디 그로브(Andy Grove)의 평전 작가이기도 한 리차드 테들로(Richard Tedlow)와 같은 외부인들을 모아서 팀을 만들었다. 지식인들로 이뤄진 이 팀은 애플의 최근 역사와 같은 중대한 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내부적인 연구작업을 작성하고 있다. 사실 이런 작업이야말로 경영대학원에서 하는 일이다. 이번 경우 애플 자신이 대상자이자 작업자라는 점만 다르지만 말이다. 팀 쿡과 론 존슨과 같은 최고 간부들이 중국 내 아이폰 제조업체 선정이나 애플스토어 설립과 같은 주제와 같은 사례들을 이들에게 직접 가르치고 있다. 경영팀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구조화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그렇다면 잡스가 더 이상 애플에 오지 않을 시기를 잡스가 적절하게 준비했는지와 상관 없는 의문이 생겨난다. 아마 대답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잡스를 개인적으로 아는 한 소식통에 따르면, 잡스는 자신의 독재를 인정하되, 그런 독재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자기만이 아니라 주장한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단세포식 조직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고 하더군요. 애플은 복잡한 다세포식 조직입니다."

잡스가 떠나면 애플이 살아남지 못 하리라 믿는 이들은 다세포식 조직도 아마 믿지 않을 것이다. 애플이 실제로 다세포 조직일 수는 있겠지만 생명의 기반은 역시 잡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모두 의견의 영역일 따름이다. 잡스 스스로는 애플을 자기가 없을 때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해 놓았다고 믿고 있다. 항상 즐겁지는 않더라도 애플의 문화를 여러 모로 만들어냈고, 자신의 방식을 내부화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잡스는 자신의 가르침을 모아서 적절하게 보존한 다음에, 애플의 다음 세대 지도자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갖고 활용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구세주만이 할 수 있는 일 아니던가.

Report by Doris Burke

원문 링크 / 번역문 링크
:

군 가산점제와 작금의 한국사회..

잉여생산물 2011. 5. 12. 15:44

나,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의 평범한 한 남성이다..

군가산점 문제도 이제는 지겹다..
언제나 군가산점제도 관련한 기사들 밑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뻔하지 뭐..
여자는 출산의 고통이 있기 때문에 이라네..
너도 엄마되어서 아들 낳아 군대 보내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네  등등..

엄밀히 말해서 군가산점이란 것이 군필자 모두에게 평등하게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공직에 진출하려는 군필자에게만 보상이 주어지는 그런 쓸모없는 보상 제도인 것이다..

물론 공직에 진출하려는 많은 남성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군가산점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여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가산점제가 부활한다고해서..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의 남성 모두가 기뻐하며 군가산점제를 반기겠는가?
절대 아니다..
단지, 공직에 진출하려고 하는 공시생들만 좋아라하고 대다수의 군필자들은 그냥 그런가보다 할것이다..
물론 군가산점제가 부활한다면 상징적인 의미에서 찬성을 하는 남성들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공직에 진출하려고 하지 않는 대다수의 군필자들은 어떤식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군가산점제는 바로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일부에게만 보상이 주어지는 반쪽짜리 제도..
또한 성차별이라는 문제를 야기시키는 제도..
군가산점제는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는 제도이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임을 감안해서..
당연히 대한의 남아라면 당연히 군대를 다녀와야 하고..
군대를 다녀온 것에 대한 보상이 필요없다고 느낄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지금의 우리의 현실을 보고 있자면 너무나 꿈 같은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군대는 당연히 다녀와야하는 곳이 아니라..
돈 있고, 빽있으면 가지 않을 수 있는 곳..
신체검사시에 꼼수 부리면 가지 않을 수 있는 곳..
연예인되어서 유명해지면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너무나 당연시 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또 실제로 이러한 만행이 너무나도 자주, 그리고 뻔뻔스럽게 이루어지고 있기때문에..
돈없고 빽없어서 군대를 다녀온 평범한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과 국가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박탈감과 배신감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박탈감과 배신감으로 인해 사회 곳곳에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군가산점으로는 박탈감과 배신감을 치유할 수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군대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뒷전으로 미루어 놓고..
많은 논란을 낳고 남녀간의 악감정만 발생시키는 군가산점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보다는..
누구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당연히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시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너무나 이상적인 결론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위해서 반드시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약간 샛길로 빠지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역대 대통령들 보면 정말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지못미..ㅡ_-;;)
예전부터 훌륭한 지도자가 있어야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수 있을텐데라고 생각했는데..
요새들어서 더욱 절실히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국민과 함께 노력한다면 선진국이 될 수 있겠지만..
조만간 훌륭한 지도자가 절대 나올 것 같지 않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기때문이다..
일부 고위층 인사들과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일제의 잔재속에서 비열하게 남의 등을 쳐먹고 호의호식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또한 그런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이러한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야하고..
그 후에는 이러한 사람들의 썩은 정신이 사라져야 하고..
위와 같은 썩은 정신이 한국사회를 지배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비로소 교육이 바로 서게 되고..
그러한 교육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비로소 훌륭한 지도자가 될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훌륭한 지도자가 나오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내가 죽기전에 그런 훌륭한 지도자를 보고 또한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는 것을 볼수 있을까?

지금의 우리나라는 사회 곳곳이 병들고, 사람들의 생각도 병들어 있는 그런 사회이다..
해외에서는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국내에서는 정부의 이상한 정책과 여러가지 사회의 병폐에 분노해야하고..
 
아무튼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연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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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은 종이책의 적이 아니다

읽을거리/사회 2011. 5. 12. 15:15
얼마 전 한 대형 서점에서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어린이가 태블릿PC에 푹 빠져 있는 걸 봤다. 사방에 널린 종이책을 앞에 두고 전자책을 선택한 어린이를 보면서 최근 출판업계 화두인 전자책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아직까지 출판업계에는 전자책이 종이책의 미래를 막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디지털 출판과 아날로그 출판은 기본적인 성격이 다르다. 종이책은 책에 담긴 내용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책 자체를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밑줄을 긋거나 좋은 페이지를 접고 메모를 하는 등 그 모든 행위가 책을 읽는 과정이다. 반면 전자책은 단순히 텍스트가 스마트폰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로 표현할 수 있는 콘텐트가 스마트 기기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즉 전자책은 종이책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아닌 멀티미디어와 결합된 새로운 시장을 연 것이다.

이는 전자책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동 학습만화를 필두로 추리소설이나 로맨스 소설 및 어학·자기계발 중심의 실용서가 매출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가볍게 잠깐씩 읽을 수 있는 책이나, 시각·청각·촉각 같은 오감을 통한 학습이 가능한 아동용 책의 특성에 잘 맞는다는 얘기다. 또 전자책 독자들의 피드백은 즉각적이다. 온라인 카페를 통한 정보공유, 개선점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제시 등 종이책을 내놓았을 때는 경험하지 못한 생기 넘치는 반응들이 쏟아진다.

스마트 시대로의 변화 속에서 전자책은 독자들과 만나는 새로운 콘텐트 창구다. 따라서 전자책을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력을 키우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 보고 탄탄한 콘텐트 개발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전자책의 활성화로 책 읽는 환경이 다양해지고 이를 통해 독서 자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면 출판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전자책은 전자책대로, 종이책은 종이책대로 각자의 장점과 특징을 살려 그 파이를 키워 나간다면 서로 긍정적으로 작용하며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책은 디지털이 채울 수 없는 공간을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메우고, 전자책은 편리하고 다양한 볼거리로 새로운 경험을 전함으로써 우리 출판의 미래를 더욱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김영진 미래엔 대표

[출처] 중앙일보 /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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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재미가 없어졌다?

읽을거리/경제/경영 2011. 5. 12. 15:13
한국 인터넷의 패자(覇者)는 포털사이트다. 뉴스 콘텐트와 검색으로 손님을 끌어 모은 뒤 광고와 인터넷 쇼핑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네이버를 거느린 NHN은 시가총액 10조원을 넘었고, 다음도 1조원을 웃돌고 있다.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의 구글조차 한국은 무덤이었다. 이런 막강한 토종 포털들이 모바일 시대를 맞아 갑자기 길을 잃고 헤매는 중이다. 서로 물어뜯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NHN과 다음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스마트폰에 제공하면서 토종 검색엔진의 탑재를 방해했다”며 구글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또한 국내 2~3위 포털인 다음과 SK컴즈가 손잡고 네이버에 맞서는 어지러운 형국이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포털의 황금시대는 끝물 조짐이다. 유선인터넷에선 여전히 절대 강자지만 모바일 인터넷에선 구글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포털의 급성장도 꺾어지는 추세가 분명하다. NHN의 경우 지난해 연결매출액과 영업이익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주저앉았다. 구글과의 한판 싸움에 국내 반응이 심드렁한 것도 문제다. 네티즌조차 토종 포털을 편드는 분위기가 아니다. 애국심도 소용없다. 국내 시장을 지배하며 마음대로 휘두른 횡포가 싸늘한 시선이라는 부메랑을 자초했다.

한때 토종 포털은 혁신의 선구자였다. 한메일(1997년)-다음카페(99년)-지식iN(2002년)-실시간 검색어(2005년) 같은 차별화된 서비스로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오래 전 이야기가 됐다. 포털들은 초창기부터 언론사의 뉴스 콘텐트는 헐값으로 넘겨받았다. 음원과 영상 저작권은 쓰레기 통에 던져버렸다. 이런 콘텐트 생산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포털들은 웹 트래픽을 독점하며 돈벌이에 몰두했다. 괜찮은 기술을 개발한 벤처기업은 덩치를 앞세워 흡수합병하기 일쑤였다. 염치없이 비슷하게 베끼는 ‘미투(me too)’ 전략도 서슴지 않았다. 오죽하면 정보기술 전문가 김인성씨는 “구글이 국내 검색 1위로 등극해야 한국 인터넷에 희망이 생긴다”고 극언(極言)할까.

토종 포털들이 가는 방향이 맞는지도 의문이다. 구글의 경우 접속자의 체류 시간을 줄이는 게 최고의 목표다. 강력한 검색엔진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뛰어난 속도와 성능으로 사용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러면서 구글은 6년 전 스마트폰의 핵심인 안드로이드를 확보해 미래를 읽는 혜안을 보였다. 이에 비해 토종 포털들은 정반대 길을 고집한다. 접속자 수와 체류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데 목숨을 건다. 더 많이, 더 오래 머물러야 광고와 인터넷 쇼핑으로 돈을 버는 단순한 구도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불길한 징조는 도전 정신의 실종이다. 포털업계의 혁신 물결이 뜸해진 2008~2010년 무렵부터 고급 인력들이 다른 분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을 만든 인물은 NHN의 공동창업자인 김범수 사장이다. 일본어 교육 앱인 코코네, 소셜 게임 1위인 선데이토즈 등도 NHN의 핵심 인력이 뛰쳐나와 세운 업체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언제부터인가 NHN에 재미가 없어졌다”며 입을 모은다. 벤처정신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독창성보다 성공이 검증된 모델만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흐름에 고별사를 던진 것이다.

세계 인터넷에는 개방(開放)·상생(相生)·공유(共有)가 3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토종 포털들만 폐쇄적인 환경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분위기다. 간혹 내놓는 상품들도 이미 나와 있는 서비스를 합쳐놓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창의성과 감동, 도전정신은 묻어나지 않는다. 국내 소비자들도 서서히 컴퓨터 앞을 떠나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을 통해 더 많은 정보와 뉴스를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모바일 인터넷의 소셜 네트워크가 유선인터넷의 포털사이트를 대체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갑자기 지배적 포식자인 토종포털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소송과 합종연횡에 바쁜 모습에서 한국판 구글의 탄생은커녕 몰락의 징조를 읽었다면 필자만의 너무 섣부른 판단일까.

이철호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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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동물원, 애플 생태계

읽을거리/경제/경영 2011. 5. 12. 15:10
이건희 삼성 회장이 '출근 경영'에 나선 것은 결국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그가 20년 은둔 경영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야 할 만큼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 당장 주력 제품의 성장 가도(街道)에 제동이 걸렸다. LCD·TV·반도체 등 현금을 쓸어담던 전공 분야에서 삼성의 기세는 작년 같지 않다.

경쟁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협공에 나섰다. 인텔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고, 일본 메이커들은 25나노급 개발로 삼성 추월 작전을 펼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무서운 것이 애플의 움직임이다. '디지털의 제왕(帝王)' 애플은 특허 소송으로 삼성의 목줄을 조여오고 있다. 애플이 삼성과의 반도체 공급 파트너십을 깰 것이란 관측도 무성하다. 아마 애플은 이리저리 삼성을 찔러보다가 약하다 싶으면 본격 공세에 나설 것이다.

이건희 회장도 작금의 상황을 잘 안다. 요즘 그는 입만 열면 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삼성이 애플의 벽을 넘어서지 않고는 진정한 글로벌 톱 기업이 될 수 없다. 기술·특허력이나 재무능력 등에서 삼성이 꿀릴 것은 없다. 애플이 스티브 잡스의 창의적 리더십을 자랑한다면, 삼성엔 빠른 의사결정 시스템과 과감한 선제투자 능력이 있다. 쉽진 않겠지만 삼성으로선 해볼 만한 게임이다.

그러나 문제는 삼성의 '홈그라운드' 사정이다. 지금 국내의 여론 흐름은 어느 때보다 삼성에 불리해졌다. 대기업이 잘돼야 혜택이 중소기업·서민경제로 흘러간다는 '폭포수론(論)'이 빗나간 결과다. 대기업 호황 속에서도 중소·하도급업체는 고전하는 현실을 보면서 국민은 삼성으로 상징되는 대기업 문제를 다시 보게 됐다.

삼성은 MB 정부가 펼친 친(親)기업 기조의 최대 수혜자다. 삼성의 천문학적 수익은 고환율 정책에 힘입은 측면이 크고, 이렇게 쌓은 현금으로 계열사를 3년 새 32%나 늘렸다. 숙원이던 금융·산업 분리규제가 폐지된 덕에 지배구조도 탄탄하게 굳혔다.

우리 사회가 이런 정책을 용인한 것은 대기업이 잘돼야 국가경제가 좋아진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이건희 회장의 조기 사면과 경영 복귀까지 이해해주었다. 그러나 '폭포수론'이 깨진 순간,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는 더이상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삼성엔 '삼성 동물원' 비유까지 쏟아지고 있다. 벤처기업인 출신 안철수 교수는 이 땅의 중소업체들이 대기업의 예속적 하도급구조에 편입될 것을 강요받는다고 주장한다. '동물원'에 들어간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죽지 않을 만큼 던져주는 먹이로 연명하다 끝난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엔 과장이 있고 틀린 부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소·벤처업계는 물론, 일반인들도 '삼성 동물원' 담론에 공감하는 여론이 많아졌다. 맞다 틀리다를 떠나 '쥐어짜는 갑(甲)'의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 자체가 삼성의 약점이다.

삼성을 죽이려 드는 애플의 전략은 대조적이다. 애플은 중소개발자들이 먹고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 주는 '생태계' 전략으로 성공을 거뒀다. 동물원이 갑과 을의 일방적 관계라면, 생태계는 공생하는 파트너십 시스템이다.

동물원과 생태계의 차이는 크다. 애플 생태계가 끝없이 진화하는 것은 수많은 참여 기업들의 자발적 혁신 덕이기도 하다. 삼성이 이런 창의적인 생태계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꼴이다.

삼성으로선 억울하게 비난받는 측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모국(母國)에서 축복과 지지를 얻지 못하는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박정훈 기사기획 에디터

[출처] 조선일보 /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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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세습’ 묵인 않는 노조원들

읽을거리/사회 2011. 5. 12. 15:07
고된 일과를 마친 뒤 술을 몇 잔 걸쳐 불콰해진 얼굴로 참석한 사람들이 거의 절반은 돼 보이는 자리였다. 50대 후반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강의가 끝나고 이어지는 질문 내용들이 좀 이상했다. 사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노동문제에 대해 받아보지 않은 질문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대상에 따라 질문 내용을 미리 짐작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강의 내용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대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많이 한다.

많은 사업장서 자녀 특례 채용

며칠 전 강의가 끝나고 받은 대학생 질문지 내용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옮기면 다음과 같다. “노조가 결성돼서 자신들의 요구를 하고 기업이나 정부가 들어준다면, 노조는 더욱더 무엇을 바랄 텐데 안 들어주면 또 파업을 할 것이고 그러면 생산성이 떨어져 나라의 소득이 줄어들 텐데 이건 처음 노조의 뜻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5월을 맞아 광주를 찾아온 ‘소수 불순’ 대학생들 중에서 나온 질문이니 보통 대학생들 대부분의 생각이 그러할 것이라고 짐작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초·중등학교 제도권 교육에서 위와 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이 일찍이 마련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제도권 교육과 언론이 위와 같은 의문을 오히려 학생들 머리 속에 심어준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평생 노동자로 살아온 50대의 노동자들이 질문을 하면서 항의하듯 거칠게 말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강사를 노동부 관리쯤으로 오해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아차 싶었다. 오래 전, 그런 노동자들을 자주 만나던 때가 있었다. 노동부와 노동조합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노동’이란 단어가 붙은 곳은 모두 한 통속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는 활동가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거다.

이렇듯 노동문제에 대해 좀더 세밀한 시선이 아쉬울 때가 많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자녀 채용 특혜요구 문제도 좀 그렇다. 많은 사업장에서 이미 소리없이 시행되고 있는 제도가 왜 유독 현대차 노동조합에서만 문제가 됐을까? 그나마 절반 가까운 조합원들이 그 조항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 주목하고 그 절반 가까운 조합원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도록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비난의 목소리만 높았다.

생산직 노동자를 엄정하게 공채로 채용하는 기업체가 많지 않다. 상당수 사업장에서 생산직 노동자들은 회사 관리자들의 추천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채용된다. 현장 초급 관리자들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어용노조 간부까지 끼어들어 이권을 나누는 곳도 적지 않다. 흔히 ‘민주노조’라 불리는 노조가 활동하는 사업장에서 그런 통로로 취업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반노동조합 정서를 갖게 된다. 쟁의행위가 발생하면 취업할 때 끈이 돼 준 소개자들은 파업대오에서 조합원들을 빼내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불공정한 관행 침묵해선 안돼

현대차 노조처럼 단체협약에 명문화할 경우 주목을 받게 될까봐 이면합의로 시행하는 기업들도 많다. 더 심각한 경우는 노조 모르게 회사가 쉬쉬하면서 충성도 높은 직원 자녀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관행이 정착된 기업들이다. 그 혜택을 묵인한 노조가 어리석다고 탓하겠지만, 그에 맞서는 싸움을 할 수 있을 만큼 조직력이 있는 노조라면 처음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대차 노조의 자녀 채용 특혜요구는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비정규직 고통을 나몰라라하는 ‘정규직 세습’이라 규탄받아 마땅하다. 그러한 비난이 단체협약 해당 조항의 타결을 막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정의감에 가득찬 비난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보다 더 말이 안 되는 불공정한 관행에 대해 입 닫고 있었던 우리들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하종강| ‘노동과 꿈’ 대표

[출처] 경향신문 /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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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론(from 네이버캐스트)

읽을거리/경제/경영 2011. 5. 10. 21:49
*네이버캐스트 > 인문/사회과학 > 경제학 > 경제이론에 연재되는 글들 중에서 읽은 글들만 링크를 걸어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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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협정 - 무역제한의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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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깊이가 없네요"라는 평가의 가혹함

읽을거리/예술/대중문화 2011. 5. 10. 18:48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깊이에의 강요'는 예술과 현실의 모순적 관계를 예리하게 간파한 소설이다. 소묘를 잘 그리는 한 유망한 젊은 여성 예술가는 전시회에서 어느 평론가에게 이런 비평을 듣는다. "당신의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깊이가 아직 부족합니다." 평론가는 단지 그녀를 북돋아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중은 그 평론가의 비평을 되새김질하듯, '깊이가 없다'는 점에 대해 떠들어댔다. 힘들어하던 그녀는 자신에게 없다는 그 '깊이'를 찾으려고 고뇌하다 결국 139m 방송탑 위에서 몸을 던지고 만다. 도대체 그녀가 찾던 '깊이'의 실체는 뭘까?

예술의 본질은 주관적이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다. 재즈는 좋지만 클래식은 별로인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림도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고, 호불호(好不好)도 갈린다. 사실 예술 비평은, 주관적인 감성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에 대해, 평론가 역시 주관적인 감정을 들이댄 것일 뿐이다. 하지만 평론가의 주관적 견해가 대중을 통해 객관적인 것처럼 확대해석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것이 대중문화의 함정이다.

물론 평론의 존재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예술 작품도 그것을 역사적·문화적으로 다듬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과 소통이 어려울 것이다. 다만 '생산적인 비평'과 '주관적 견해의 배설'은 다르다. 소설 내용처럼 악의는 없었지만, 깊은 고민 없이 나온 평론이 때로는 한 예술가를 극단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바야흐로 오디션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아마추어는 물론, 기존 프로페셔널들까지 분야를 넘어 새로운 도전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의 퍼포먼스에는 갖가지 평가들이 난무하며 인터넷을 달군다. 숨겨진 원석을 찾아 아름답게 다듬거나, 좀 더 탁월한 공연을 위한 비평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가끔 "○○씨의 노래는 그 무언가가 없어요"와 같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평가를 접할 때마다 씁쓸해진다. 그 '깊이에의 강요'가 앞날이 창창한 이들을 헤어나지 못할 늪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주관'의 영역인 예술에 대한 비평은, 그것이 최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일 때 생산적일 수 있다. 경험을 통해 대중문화의 명암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의 좀 더 세심한 배려를 기대한다. 

김주헌 前 UNEP 컨설턴트

[출처] 조선일보 / 원문 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5/09/20110509019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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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교육이 부른 학생 카스트, ‘알짜-예비-잉여’

읽을거리/인문 2011. 5. 10. 18:47
이쯤 되면 학교가 막장까지 왔다고 해야 하겠다. 학교는 학생을 성적에 따라 차별하고, 그런 학생들이 자신들을 알짜배기, 예비, 잉여로 나눠 비하하고 경멸할 정도라면, 그건 지식과 인성의 배움터가 아니라 아이들의 무덤이다. 학교간 무한경쟁 정책으로 말미암은 이 파행이 아이들을 얼마나 더 막장 속으로 빠뜨릴지 답답하다. 
변칙적인 우열반 운영 등은 잘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그 교묘함이나 차별의 심각성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겨레> 취재 결과, 특별한 독서실은 물론 별도 교과과정까지 적용하는 특별반이 등장했다. 성적우수자를 위한 독서실의 좌석과 신발장까지 성적순으로 배치하는 학교도 있었다. 일부 수도권 학교는 통학생을 위한 기숙사를 성적순으로 배정해 시골 학생들이 배제되기도 했다. 

이런 학교 학생들은 극도의 자멸감과 함께 공격성을 드러내 보였다고 한다. 도서관을 성적순으로 칸막이해버린 학교의 100등 밖 아이들은 자신을 ‘잉여’라고 자조했으며, 글로벌 리더반(글리반)을 운영하는 학교에선 기타반 아이들이 ‘글리반’을 ‘글레기’(글로벌 쓰레기)라고 멸시했다. 선의의 경쟁과 함께 협력, 우정의 소중함을 배워야 할 아이들이 좌절과 적대감부터 쌓아가고, 세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내면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 정권이 출범과 함께 강제한 게 학교간 무한경쟁 체제였다. 특목고나 자사고 확충, 일반계 고교에 대한 학교 선택제,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일제고사 성적 공개 등이 그것이다. 이것이 학교 평가를 아이들의 창의력, 문제해결능력, 자기주도학습능력이 아니라 상위 서열 대학 진학생 수로 결정하는 현실과 맞물려, 학교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갔다. 소수를 위한 전대미문의 차별 입시교육과 다수에 대한 방치와 소외라는 학교 현장이 그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감사에 착수했다고 하나 악폐를 일소할 것이라 기대하기 힘들다. 정규 교과과정을 명백히 훼손한 경우가 아니면 딱히 징계하기 어렵다. 참여정부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반 편성, 독서실 면학실 운영에서 성적에 따른 차별을 평등권 침해라고 규정해 시정 권고를 했지만, 이 정권 들어서는 나서는 기관도 사람도 없다. 결국 문제는 정부 정책이다. 아이들과 나라의 내일을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이제 경쟁지상주의 깃발을 내려 학교를 막장에서 구해야 한다. 

[출처] 한겨레 사설 / 원문 링크 :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4766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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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투표’의 재미?!

읽을거리/예술/대중문화 2011. 5. 10. 18:45
2001년, 영화 <친구>가 한국 영화 흥행기록을 경신할 때였다. 일간지 영화 담당 기자를 하면서 이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를 짚어보는 기사를 썼다. 교복 세대의 향수를 자극했네, 불행한 성장기를 위로하네…. 지금 보면 하나마나한 소리 같은데 반응이 컸다. 문화면 기사는 좀처럼 안 읽던 정치부 선배부터 시작해 꽤 많은 이들이 그 기사를 얘기했다. ‘이런 기사 좋아들 하는구나!’ 이런 기사? 대중들이 뭘, 왜 좋아하느냐에 관한 기사 말이다. 다들 대중이면서도 대중이 뭘 좋아하는지 궁금해하는구나.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자기와 동시대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겠지. 너무 거창한가? 그렇지. 대중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성공할 것 아닌가. 대중의 취향이 구매력과 연결되면 영화든 책이든 대박 나는 것이고, 선거와 연결되면 권력을 잡는 건데. 그러고 보니 대중이 대중을 궁금해한다는 게 당연한 말이네. 정치부 선배도 관심 가질 만했네. 
그런데 또 이상한 게, 대중의 취향이나 기호는 얼마나 빨리 바뀌던가. <친구> 이후로 나왔던, ‘교복 세대의 향수’에 호소하는 영화들 대다수가 실패하지 않았던가. 영화 기획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중의 취향을 맞추는 건,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비슷하게 힘들다. 어찌 보면 대중, 그 무차별한 집단의 기호를 정확히 읽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 아닐까. 장님 코끼리 만지듯 자기 경험치 안에서 판단해 놓고 어쩌다 그게 맞으면 그저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일 아닐까. 

여하튼 언론은 블록버스터 영화, 베스트셀러 서적뿐 아니라,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몰리면 그 이유를 짚는 기사를 꼭 내보낸다. 그런데 또 그런 기사치고 잘 썼다 싶은 게 없다. 얼마 전 서태지·이지아의 이혼 사실이 알려져 난리가 났을 때도 그랬다. 대중들이 왜 광분하는지 매체마다 기사를 썼는데 그게 다 하나마나한 소리 같았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 된다. 대중이 대중을 궁금해하는데, 대중을 알기란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래서 더?) 대중은 대중을 궁금해한다. 

문화방송의 가수 오디션 프로 <위대한 탄생>엔 ‘대국민투표’가 나온다. 여기서 ‘대’자가 ‘對’인지 ‘大’인지,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싶은데, 시청자 투표를 하고 그 결과를 70% 반영해 당락을 정한다. 이 프로뿐 아니라 <슈퍼스타 케이> <오페라 스타> 등 시청자 투표를 하는 프로가 최근에 부쩍 늘었고 모두 인기도 좋다. 

그런데 보자. 오디션 프로의 생명은 룰의 공정함이다. 시청자 투표가 과연 공정한가? 이 투표엔 노래 실력 말고도 오만가지 변수가 다 끼어들 거다. 잘생겨서 찍고, 거꾸로 예뻐서 안 찍고, 사연이 딱해서 찍고, 거꾸로 부잣집 자식에 공부도 잘해서 찍고, 출신 지역이 같아서 찍고, 친구가 찍으라고 해서 찍고…. <위대한 탄생>의 최근 투표 결과를 두고, 사정 딱한 이들한테 밀려 노래 잘하는 이들이 떨어졌다는 둥, 예쁜 여자들부터 떨어졌다는 둥 이런저런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투표 결과엔 모두 승복한다. 많은 대중이 뽑았다면, 어쨌든 대중성은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또다른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아! 대중들은 저런 얼굴을 좋아하는구나! 저런 사연을 딛고 일어서는 드라마를 원하는구나! 아까도 말했듯이, 대중에게 대중은 끝없이 궁금한 존재 아니던가. 

미국의 시청자 투표 오디션 프로 <아메리칸 아이돌>에 대해 미국의 한 매체는 “매년 1등 한 이들이 음반 차트와 여러 시상식을 석권하고 있으니, 시청자 투표 방식이야말로 공정하고 유효하다”고 썼다. 한국은 아직 이런 오디션 프로에서 1등 한 이들이 상업성까지 거머쥐는 성취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여하튼 이 시청자 투표 방식이라는 게 묘하게 다가온다. 투표에 일정한 기준도 없고, 자기 기대치를 배신해도 순종하게 되고 마는 요상한 결과물, 즉 대중성이라는 요상한 동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지켜보는 게, 이들 프로의 또다른 재미 아닐까.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출처] 한겨레 / 원문 링크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767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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