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되살리는 SNS

읽을거리/사회 2011. 5. 10. 18:41
사회과학 200년의 역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뭐라 해야 할까. 나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공동체가 사라지고 그 빈 자리를 어떻게 국가와 시장이 채워나가는가에 대한 기록이다”라고. 이렇게 보면 사회과학 내부 분파들 사이의 차이 정도는 사소한 것이 되어버린다. 공동체를 몰아낸 자리에 들어선 시장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말하면 아담 스미스가 되고, 그것이 얼마나 계급적이고 폭력적인지를 말하면 카를 마르크스가 된다. 국가가 얼마나 이데올로기적 기구인지를 말하면 알튀세가 되고, 그것의 관료적 작동양상에 주목하면 막스 베버가 된다. 하지만 작은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공통점은 공동체가 사라지고 국가와 시장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내년 선거 ‘소셜 정치’ 뚜렷해질 것

‘나’와 ‘너’ 사이에 ‘우리’가 있다. 거기야말로 공동체의 자리이다. 공동체는 ‘나’와 ‘너’의 단순 합이 아니다. 시장이 갈라놓은 ‘나’와 ‘너’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져가려는 이기적 개인들일 뿐이지만 ‘우리’는 미래와 환경과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과 우리 모두의 운명을 염려한다. 국가의 감시와 통제에 짓눌린 ‘나’와 ‘너’는 한없이 작은 납세자일 뿐이지만 ‘우리’는 우리 모두를 위한 국가를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꿈을 같이 꾸는 사람들이다. 이 모든 것이 ‘나’와 ‘너’ 사이에 있는 공동체에서만 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공동체를 지키고 가꿔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소중하다.

나는 작년 11월 이 지면을 통해 트위터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경향신문 2010년 11월11일자 정동칼럼). 신자유주의 시장의 거센 파고와 지난 몇 년간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후퇴시킨 국가의 강압 속에 멸종된 줄 알았던 ‘우리’가 트위터와 같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난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재·보선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내년 양대 선거에서는 더욱 커질 것이다. 되돌아온 ‘우리’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정치적 공동체의 귀환이다. 내년 선거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소셜 선거가 될 것이고, 정치적 공동체가 멸종위기에 처한 것을 은근히 즐기고 있던 사람들로서는 두려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표의 크기로 보면 최소 10퍼센트 내외의 유권자가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SNS ‘홍보’ 아닌 ‘소통의 장’ 돼야

이러한 근본적 변화의 끝자락을 감지한 것일까.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SNS를 활용해 정부정책을 홍보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하고, 며칠 전부터 트위터에 국무위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방통위는 소셜플랫폼 전략이란 것을 발표하면서 이름도 어려운 ‘인포데믹스(왜곡된 정보의 확산)’를 차단하겠다고 나섰다. 천당 바로 아래에서 패배한 강재섭 후보의 “특히 SNS를 조심해야 한다”는 경험담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재·보선 선거운동이 시작될 무렵 20퍼센트 이상 앞선다고 조사되었던 강원도에서조차 패배한 것도 공포감을 키우는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SNS는 홍보의 장이 아니라 소통의 장이고, 인포데믹스가 아니라 집단지성의 장이며, 조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공감해야 할 대상이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되살리고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정부여당은 아직도 변화의 끝자락밖에 붙들지 못한 것이다. 불리하기 때문에 홍보와 규제와 차단을 하려 한다면 사태는 점점 더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자신들이 대표하도록 되어있는 유권자를 제대로 대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누이 말하지만 정치와 권력이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지 않을 때 뉴미디어는 ‘대표되지 않은 자의 무기’가 된다. 트위터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정치가 마주해야 할 것은 어제의 패배적인 ‘너’와 ‘나’가 아니라 주권자의 자리를 되찾겠다고 선언한 ‘우리’이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출처] 경향신문
원문 링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042105095&code=9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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