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폐기’ 강력히 요구한다

읽을거리/사회 2011. 5. 10. 18:29
지난 1995년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지구환경정치론’이란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수업시간에 가장 심각하게 강조한 것은 핵발전소 문제다. 이 주제를 마무리할 때면 항상 ‘예언’한 것이 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핵발전소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에서 일어날 확률이 아주 높다는 얘기였다. 삼풍백화점 및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보여줬듯이 한국이 거대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내 나름대로의 분석 때문이었다. 내 예측의 절반은 빗나가버렸다. 일본 후쿠시마의 핵발전소 폭발 및 붕괴 사건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일본의 기술과 관리능력에 대한 믿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지난 두 달간 후쿠시마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과 담론이 쏟아져나왔지만 거기서 한국 사회는 별다른 ‘학습’을 경험하지 못한 것 같다. 핵발전소 폐쇄 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났어야 하는데 예상외로 조용하다. 기껏해야 핵발전소 21기의 안전문제를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한국 사회에서 ‘원자력’이라는 그럴 듯한 번역어로 포장된 ‘핵(nuclear)’에 대한 공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안면도·부안 등지에서 일어났던 방폐장 설치 반대운동이 그 근거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핵’에 대한 신화도 뿌리깊다. 핵무기가 있으면 왠지 든든하고 또한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다. ‘핵무기 민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경향이 박정희 정권 이후에도 남아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핵발전소에 대한 기대와 과신으로 이어져왔다. 이 뒤에 정부, 핵 관련 과학자·전문가 집단, 주류언론 간에 보이지 않는 정치적 동맹이 존재한다고 봐야 할까. 그 동맹에서 유포하고 있는 핵발전 관련 담론은 단순하다. 원자력은 ‘청정 에너지’이고 안전하며, 비용이 싸고 그것을 대체할 에너지가 현실적으로 부재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믿음에는 과학적, 경제적 근거가 얼마나 있을까?

이필렬 교수의 지론처럼 핵발전소의 안전에 관련된 장치가 수없이 많다는 사실은 바로 그만큼 그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다. 비용이 싸다? 1㎾/h를 생산하는 데 드는 현재 비용은 원자력이 수력이나 화력에 비해 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비용에는 사용 후 폐연료 처리, 고준위와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 및 저장(고준위 폐기물을 안전하게 영구히 저장하는 방법은 아직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수명이 다한 원자로 해체, 주변 환경 복구 비용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형 사고로 인한 비용은 두말할 것도 없다. 재생에너지가 비현실적인 대안일까? 물론 단기간에 원자력을 재생에너지로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수명이 다하는 대로 원자로를 하나하나 폐기한다면 장기간에 걸쳐 ‘탈핵사회’를 이루는 것은 가능하다. 산업화의 수준이 한국보다 결코 떨어질 리 없는 독일에서 2050년까지 현재 24.4%에 달하는 원자력 의존도를 0%로 떨어뜨리고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83%까지 올리는 계획을 세운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에 폭발 25주년을 맞은 체르노빌 발전소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현재 원자로를 봉인한 시멘트 덩어리에서 균열이 생겨나고 있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또다시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80만명이 피폭된 체르노빌 사건에서 배우지 못한 것처럼 한국도 후쿠시마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일본의 반핵발전 시위에서 나왔던 구호가 머릿속을 맴돈다. “(원전 폐기를) 강력히, 강력히, 강력히 요구한다!”

권혁범|대전대 교수·정치학

[출처]  경향신문
원문 링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081922325&code=9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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