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을 경계한다
읽을거리/사회 2011. 5. 4. 17:33
많은 이에게 선망의 대상인 미국이 우리보다 못한 분야는 바로 의료보험이다. 수천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의료보험 없이 살고 있고, 그러다보니 손가락 곪은 걸 돈을 들여 치료하느니 그냥 잘라 버리는 길을 선택하는 게 그네들의 실상이란다. 전체 병원의 93%가 민간병원인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이 땅의 모든 병원은 죄다 국민건강보험과만 계약을 해야 한다’는, 이른바 ‘당연지정제’ 덕분이다.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면, 이 건강보험이 굉장히 좋은 보험이라는 것.
내가 의료보험료로 2만원을 낸다고 해보자. 그러면 건강보험법에 따라 나를 고용한 직장에서도 똑같이 2만원을 부담해 주고, 정부는 이 둘을 합친 4만원의 20%, 그러니까 8000원을 내준다. 자기가 낸 보험료의 2.4배가 보험료로 적립되는 셈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걷은 보험료 중 국민들의 의료비로 지출하는 비율, 즉 급여율이 100%가 넘는다. 직원들 월급도 주고 이익도 내야 하는 민간보험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수치로, 2006년만 봐도 급여율이 무려 114%에 달한다. 이러니 건강보험이 적자가 날 수밖에. 보험료를 올려도 적자가 계속되는 이유는 돈이 생기면 생길수록 또 다른 서비스를 해주기 때문인데, 2010년 보험료가 4.9% 오른 대신 뇌혈관질환 등 9가지 질환에 대한 보험적용이 확대된 게 그 한 예다. 다른 세금과 달리 건강보험료 인상엔 너그러워도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 건강보험이 부자들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은 제도라는 것. 건강보험료의 책정이 소득에 따라 누진적으로 결정되는 탓에 일반 서민들은 자기가 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받는 반면 부자들은 비싼 보험료를 내면서도 별반 대접을 못 받으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황금알을 낳는 의료시장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민간보험사들도 건강보험이 밉고, 의사들도 건강보험이 정한 낮은 수가가 탐탁지 않다. 사정이 이러니 가진 자들을 유난히 배려하는 현 정권으로선 건강보험의 틀을 무너뜨려야 할 동기가 생기게 마련이다.
“정부는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을 시범 도입한 후 전국 확대 여부를 논의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4월28일자, 경향신문)
영리병원은 말 그대로 영리를 위한 병원이다. 이게 생기고 나면 수익을 낼 수 있는 비보험진료에 집중할 테고, 궁극적으로는 수가가 싼 건강보험 대신 돈을 많이 주는 민간보험사와 계약하려 할 것이다. 건강보험의 핵심 틀인 당연지정제가 깨진다는 얘기다. 한 번 물꼬가 트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지게 마련이어서, 나중엔 삼성병원이나 아산병원에 가려면 지금보다 10배 이상의 돈을 줘야 가능할 것이다. 이런 비난을 의식한 보건복지부는 “영리병원 도입의 전제조건은 당연지정제 유지”라고 둘러대지만, 그게 말이 안된다는 건 그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터다.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당연지정제는 저절로 폐지될 수밖에 없다.”
경만호 대한의사협회장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얘기다. 물론 그는 당연지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쪽이지만, 그의 발언에는 복지부가 숨기려던 진실이 담겨 있다.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정형근은 이렇게 말했다. “영리병원을 허용한다면 건강보험은 뿌리째 흔들릴 것이 뻔하다.” 그러면서 그는 영리병원에 대한 반대의견을 거듭 천명했는데, 살아생전 내가 어떤 사안에 대해서든 정형근의 의견에 동조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안기부의 저승사자였던 정형근도 반대하는 영리병원이니, 얼마나 무서운 병원이겠는가? 영리병원을 경계해야 할 이유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출처] 경향신문 / 원문 링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출처] 경향신문 / 원문 링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