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당신을 지켜주려면

읽을거리/경제/경영 2011. 5. 4. 17:30
직장 상사에게 호되게 당했다. 당장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뛰쳐나가고 싶다. 책상 서랍 속의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는 순간, 문득 노후가 불안하다. 여기서 계속 버티면, 내게는 무엇이 남게 될까?

그리고 국민연금관리공단 웹사이트에 들어가 본다. 현재 소득을 계속 유지하면서 정년까지만 버티면 만 65살 이후 최소 생활비는 나온단다. 또 한번 참는다. 서성대다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직장인의 흔한 일상이다. 국민연금은 이렇게 우리 국민 곁으로 왔다. ‘노후 생활비’라는 간판을 걸고.

그런데 그 직장 상사는 왜 내게 모진 말을 던졌을까? 틀림없이 실적, 그것도 이번 분기나 이번달 실적 때문이다. 분명 사장님에게 크게 당하고 왔을 것이다. 사장님은 납품 대기업의 젊은 대리에게 쓴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그 대리 위에는 다시 부장과 임원과, 실적 나쁘면 바로 쫓겨날 형편인 사장이 있다. 모두가 쫓기는 게임, 그 마지막에는 누가 있을까?

그 끝에는 ‘어떻게든 비용을 더 줄이고 매출을 늘려라’라고 호통치는 ‘주주’가 있다.

국민연금은 그 ‘주주’의 자리에 있다. 그것도 거대한 주주다. 삼성전자의 5%, 현대자동차의 5.95%, 포스코의 5.43%를 보유하고 있다. 이 정도면, 투자자로서 당장 배당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기업이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 미래 생활비를 맡아 관리하는 기관이 동시에 나의 현재를 압박할 수 있는 모양새다. 국민연금이 단기 수익률을 높이는 데만 급급하면, 정작 우리 삶의 안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좀더 나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집속탄’은 분쟁이 끝난 뒤에도 그 지역에 수많은 불발탄으로 남아, 민간인을 살상하고 장애인을 양산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제사회의 금지 요구가 거세다. 한국에서는 한화와 풍산이 집속탄을 생산한다는 지목을 받고 있다. 둘 다 상장기업이다. 국민연금은 이 두 기업의 지분을 각각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당신의 노후 자금 일부는, 당신의 가치관과는 전혀 상관없이, 인명살상용 폭탄 제조기업에 투자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다. 연금은 담배회사에도 공해산업에도 투자되어 있다.

우리는 미래 생활비를 마련한다면서, 환경을 파괴하고 수명을 단축하는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출처] 한겨레 / 원문링크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761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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