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인문

손안의 바보상자

nsc 2011. 5. 10. 18:39
스마트폰 가입자가 1000만명을 넘었고, 올해 말에는 20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모바일 인터넷의 확산은 일상의 풍경을 빠르게 바꿔가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하철이다. 무가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그 대신 스마트폰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게임부터 정보 검색과 영화 감상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사이버 세계에 잠겨 있다. 이동하면서도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으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스크린 앞에서 보낼 것이다.

스마트폰은 아이들 놀이 욕구도 바꿔놓고 있다. 아빠의 스마트폰을 갖고 놀기 위해서 아빠의 귀가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자녀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스마트폰에 노출되는 연령이 점점 낮아진다. 시중에 이미 여러 가지 육아용 애플리케이션이 보급되고 있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 많다. 심지어 0세용 프로그램도 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본 장면이다. 어느 주부가 유모차에 아이를 앉혀 놓고 무슨 재주로 아이를 재미있게 해주는지, 깔깔 웃는 소리가 꽤 멀리까지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스마트폰을 아이의 눈앞에 고정시켜 놓고 어떤 단순한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중에 본 장면도 떠오른다. 어떤 주부가 만 한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스마트폰을 열어 어떤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멋진 봄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데 차창을 커튼으로 가려놓은 채.

스마트폰에 길들여지는 아이들

무엇이 문제인가. 어른은 편하고 아이는 재미있어 하니 그것으로 좋지 아니한가. 그렇지 않다. 어른도 디지털 신호에 너무 노출되면 생각하는 힘이 떨어지고 매사에 쉽게 싫증과 짜증을 낸다. 그리고 타인과 얼굴을 마주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지능과 감성이 퇴화된다. 임상심리학자 콕스는 말한다. “이야기를 읽고 듣는 경우와 달리 쉴 새 없이 퍼붓는 전자적 자극은 심층 청취 기술이나 폭넓은 감정표현 능력을 저해한다.” 아이들에게 그 폐해는 훨씬 치명적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똑똑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모들이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한데, 지금 아무 생각 없이 아이에게 들이대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전자적 자극은 매우 현란하기 때문에 시선을 강력하게 빨아들인다. 아이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듯 보이지만 그냥 수동적으로 홀리는 것일 뿐이다. 시선은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고 두뇌는 단순한 반사작용만 거듭한다. 거기에 길들여지면 오프라인 상태에서는 주의력 결핍증에 빠지기 쉽다.

아이들의 발육과 성장에 필요한 것은 유기적인 경험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표정을 읽으면서 상호작용하는 것, 울퉁불퉁한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면서 그 질감을 느끼는 것, 이러저러한 공간을 탐색하면서 신체 감각을 익히는 것, 자연의 알록달록한 풍경을 자유롭게 관찰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 이 모든 것이 이른바 인성교육의 필수 아미노산이다. 창의성을 증진시키는 바탕이다. 청소년의 게임 중독 내지 과몰입으로 많은 부모와 교사들의 고민이 깊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영아기부터 전기 자극을 쏟아붓는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불빛을 향해 하염없이 달려드는 나방의 수준으로 두뇌를 퇴화시킨다고 할까. 얄팍한 심성은 작은 난관에도 좌절하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닫곤 한다. 눈길 닿는 곳마다 영상으로 도배된 생활환경 속에서 어른들도 단세포 동물처럼 되어가며 그러한 상황에 둔감해지는 듯하다.

성 메마르고 창의성 계발안돼

사람은 심심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무료함 속에서 마음의 부피가 자라나고 문화가 생성된다. 안에서 솟아오르는 힘으로 인간은 자신만의 탄탄한 삶을 창조해갈 수 있다. 자아 형성의 공간을 다양하게 열어놓을 때, 아이들은 자기를 정당하게 사랑하며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무의식과 즐거운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세계와 자유롭게 교섭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여백을 허락하자.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눌 일이며, 주변의 사물들에 물음표를 달며 손짓할 일이다.

김찬호|성공회대 초빙교수

[출처] 경향신문
원문 링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05192549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