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사회

‘실패할 권리’ 없는 사회

nsc 2011. 5. 9. 19:38
이 땅의 아이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꼭 지켜줘야 할 권리가 있다. 방황할 권리, 실패할 권리다. 사람은 누구나 방황하고 좌절하면서 성장한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성공의 문턱에 오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실패에 대해서 가혹하다. 한 번 넘어지면 낙오자, 패배자가 되고 만다. 다시 일어설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몇 해 전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 졸업식에 참석해 자신의 도전과 실패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혼모였던 생모는 잡스를 대학에 보내주는 조건으로 양부모에게 맡겼다. 약속대로 양부모는 잡스를 대학에 보냈지만 잡스는 대학 교육이 어떤 도움이 될지 확신이 없다며 6개월 만에 자퇴했다. 그는 친구 집에서 잤고, 빈 콜라병을 모아 병당 5센트에 팔아서 먹을 것을 샀다. 공짜 밥을 먹기 위해 10㎞를 걸어 힌두교 교당까지 찾아갔다. 대신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 잡스가 매료된 것은 서체였다. 그는 매킨토시 컴퓨터가 미려한 서체를 가지게 된 것은 자신 덕분이라고 했다.

잡스가 늘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니다. 창업 10년 만에 애플은 20억달러짜리 회사가 됐지만 잡스는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그가 영입한 동업자들과 불화가 생겼고, 이사진은 창업자인 잡스를 쫓아냈다. 잡스는 “돌아보면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다. 성공이라는 부담을 벗고 홀가분하게 초보자로 다시 돌아가 내 인생의 가장 창의적인 시기로 접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잡스는 이후 픽사를 창업했고 세계에서 가장 큰 애니메이션 회사로 키워냈다.

흔히 한국 사회에서는 잡스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아무리 창의적이고 천재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대학 중퇴자에게 밑천을 대줄 사람도, 아이디어를 사줄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떠받들고 있는 신념은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승자독식의 논리다. 개혁이란 이름을 내건 것들을 들여다보면 우수 인재, 좋은 성과를 위해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 일색이다. 그러다보니 초등학생도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열 살 때인 초등학교 4학년 때 대학이 결정된다는 무섭고 섬뜩한 말까지 나돈다. 부모들은 자식의 미래를 위한다며 아이들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뺑뺑이’ 돌린다. 중학교에서는 특목고 경쟁을 벌이고,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면 취업원서조차 얻기 힘들다. 대학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보다 성적 우수자에게 장학금을 주고, 오갈 곳 없는 지방 학생 대신 성적 우수자에게 기숙사를 제공한다. 모든 것이 승자 우선이다.

이런 극심한 경쟁에서는 승자도 위태롭다. 올해 초 목숨을 끊은 카이스트 학생들도 고교 때까지는 모두 승자였을 것이다. 이들은 초·중학교에서 ‘경쟁의 사다리’ 맨 앞자리에 올라서 과학고에 진학한 수재였다. 로봇영재였다는 학생은 영어·수학 점수는 다른 학생보다 뒤질지 모르지만 로봇대회를 휩쓸며 탁월한 재능을 보여줬다. 그런데도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잡스는 스탠퍼드대 졸업생에게 “늘 배고픈 채로, 늘 어리석은 채로 남으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한 번 실패에 낙오자가 되기 십상인 사회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것은 ‘실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두 번 세 번 도전할 기회가 없다면 누가 실패를 무릅쓰고 어려운 길, 배고픈 길을 갈 것인가. 도전은커녕 모두가 이기는 길, 안전한 길을 택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는 방황과 실패도 권리여야 한다. 방황과 실패가 트라우마가 아닌 인생의 자산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최병준|사회부 차장

[출처] 경향신문
원문 링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042121475&code=990000